6월 14일
언제나처럼 오전 5시 반쯤에 눈이 뜨여서 터치를 쥐고 침대에서 뒹굴뒹굴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골반쪽 배 - 정확히 말하면 치골쯤? - 에서 딱! 하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뭔가 따뜻한 게 주룩~하고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어, 서둘러 화장실로 갔다.
속옷과 변기 속에 끈적한 피가 흘러내려 있는 게 보였다.
아하, 이게 이슬이구나; 싶어 일단 생리대를 대고, 시계를 보니 오전 6시.
출혈량이 좀 많다 싶었지만, 이슬 보고서 출산까지는 24시간 이상 걸린다는 얘기가 많아 느긋하게 준비를 시작했다.
캐리어에 입원용 짐을 챙겨넣고, 배가 고파 바나나를 하나 뜯어 우물우물 먹어치웠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려나; 그 농익은 바나나 한 개가 출산할 때까지 내가 먹은 것 전부였다 ㅠ_ㅠ
남들은 이슬오고 나면 삼겹살 먹고 애 낳으러 간다더니;;;
진통 사이사이에 먹고 싶은 거 리스트도 대충 만들어놨었는데;;;
어쨌든;;;
마모짱을 7시 15분쯤에 깨워 출근준비를 시켜야 하니
그 시간까지 좀 쉬자 싶어 소파에 멍하니 앉아있는데 규칙적으로 배가 아파지는 거다.
진통인가! 싶어 시간간격을 재봤는데
몇번을 재봐도 눈을 의심하게 하는 결과가;;;
보통 이슬보고 나서 빨라도 10분 간격 진통부터 시작한다는데
이상하게도 6~7분 간격에 진통 시간도 전혀 10초가 아닌거다;;;
처음부터 20~30초를 넘는 진통이 계속되는 바람에
이건 좀 수상하다 싶어 마모짱을 깨운게 오전 7시.
마모짱이 이번주 바쁘니까 18일 정도에 나와줘 하나짱~을 목놓아 외쳤건만;
결국 마모짱이 제일 바쁘다던 14일 월요일에 진통이 시작되어 버렸다;;;
어쨌든 깨워서 "마모짱 기대를 배신해서 미안한데, 오늘 하나 얼굴 볼 수 있을지도? " 라고 하니
벌떡 일어나 당황하며 여기저기 왔다갔다하기 시작하는 마모짱 ㅋㅋㅋ
그러나 그때까지도 "이슬 비친후 10분 간격 진통부터 시작" 설을 믿고 있던 나는
지금은 가진통일 거라고 철썩같이 믿고 일단 마모짱이 출근 준비를 하도록 했는데...
안되겠다;;;
도저히 배가 아파서 아침식사를 준비하질 못하겠더라;;;
배도 점점 아파오고... 아플때는 숨을 못 쉴 정도고...
간격이 짧아서 뭐 먹는다는 건 생각도 못하겠고...
병원 24시간 접수처에 전화를 걸어보니, 이슬 보고 얼마 안 지난 초산부라 아직이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일단 외래로 접수해서 자궁문 열린 정도를 체크해보자고 한다.
9시 전에 병원에 도착할 수 있도록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가진통이라면 집에서 대기할 생각이어서, 입원준비물 가방은 일단 집에 두고
마모짱도 출근 복장 그대로 병원으로 갔다.
병원으로 걸어가는 도중에 진통이 더 심해져서
병원 접수처 앞에서 쓰러지는줄 알았다;;;
월요일 오전 9시 직전이라 진찰 기다리는 사람 많았는데
사람들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곧 애낳을 사람 포스"를 풀풀 풍기며 로비의 소파에 털썩 널브러졌다.
소파에서 잠시 기다린 후, 접수순서 무시하고 바로 진찰실로 안내받았다.
내진 결과는... 자궁문 4cm 넘게 열림... -_-;;; 바로 입원합시다 크리 작렬 -_-;;;
이슬보고 24시간 이상 걸린다며!!! orz
초산부는 시간 더 걸린다며!!! orz
내 삼겹살... 그외 기타 맛난것들 ㅠ_ㅠ orz
낯익은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3층으로 향했다.
산모 입원실은 2층, 분만실은 3층에 있는데, 진통할때는 3층에 있는 개인실에서 진통하다가
자궁구가 다 열렸다 싶으면 분만실로 이동하는 식이었다.
짐을 가지러 마모짱을 급히 집으로 보내고
나는 병원에서 준 잠옷과 속옷으로 갈아입었다.
그 와중에도 점점 더 심해지는 진통... 아 욕나와 -_-;
저 옷 갈아입는데 진통 때문에 10분 가까이 걸렸다면 믿어질까? 진짜 그랬다 -_-
아직 비명지를 단계는 아니고
배는 점점 더 아프고 해서
그냥 애꿎은 볼펜(...왜? -_-)만 손에 쥐고 열심히 비틀어가며 견뎠다.
적당히 손에 쥘만한 게 그거밖에 없더라 -_-;
배에 진통/아기 심박 체크용 모니터를 붙이고 일단 조산사 퇴실.
진통을 참다가 정말 못 견디고 화장실 가고 싶어질 거 같은 느낌이 들면 버튼을 눌러 간호사를 부르란다.
침대에 옆으로 누워 아플때마다 볼펜을 쥐어짜고(...) 안아플때는 눈감고 쉬면서 견뎠는데
조산사분이 나간지 얼마 되지도 않은 거 같은데 갑자기 미칠거같은 느낌이 드는거다.
다리가 저절로 쩍 벌어지려고 하고 하반신 전체의 근육에 내가 넣지도 않은 힘이 미친듯이 들어가고
지금이라도 아래로 뭐가 당장 나올거 같은 느낌;
이때는 진짜 배가 아픈 게 아니라 골반과 항문쪽이 지금이라도 터져나갈 거 같은 압박감이 들었다.
실제로 아픈 것보다는 압박감이 대단함; 물론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안 할려고 그래도 비명이 절로 나올 정도다.
비단 찢어질정도로 높은 비명은 아니지만, 신음소리보다 좀 큰 비명이 저절로 입에서 흘러나온다.
허리는 생각보다 많이 아팠다는 기억은 없다.
급히 마모짱에게 버튼을 누르라고 부탁해 조산사를 불렀다.
다시 내진 실시.
다른 사람들 출산기에 보면 내진이 차라리 시원하다(?)고 하던데 난 전혀 그런거 없었음...
내진할 때도 그냥 불편했다. 시원하고 어쩌고 없었음;;;
내진 결과는 자궁구가 8.5cm 열림... 분만실로 옮기기로 했다.
이때 시간이 10시 30분경... 9시 좀 넘어서 4cm 열렸는데 1시간 반정도에 5cm 가까이 열린거다.
빠르기도 진짜 빨라요... -_-; 누가 제 아빠 아들 아니랄까봐;;;
분만실로 옮기는 데 걸어갈수가 없어서 휠체어에 타고 갔다(...) 거리도 얼마 안 되는데;;;
분만실 이동 후 나는 분만대에 눕고 마모짱은 소독후 마스크, 간이 수술복(?)등등 복장을 갖추고 입실.
옆에서 조산사와 간호사등 3명이 이것저것 체크를 하고, 허리 아래로 가리개를 하고, 호흡을 하도록 지시했다.
처음에는 힘을 주지 못하도록 하는데 나중에는 짜증이 났다;;; 저절로 힘이 들어가는 걸 어쩌라고;;;
아프긴 아픈데 어찌어찌 호흡에 집중하려고 하니 되긴 되더라.
어머니 학급의 강사가 아플때는 비명을 지르더라도 어쨌든 숨을 쉬라고 하던 걸 기억하며
호흡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때 배운 복잡한 호흡법은 하나도 생각안나더라는 거 -_-;
그냥 옆에서 시키는 대로 집중해서 숨을 쉬려고 했다.
결국 그래도 나중에는 산소 마스크 썼음;
드디어 힘줘도 되는 시간(?)이 되어서, 열심히 힘을 줬다.
숨을 깊이 들이쉬고 멈춘 상태에서
분만대 옆 손잡이를 쥐고 상체를 살짝 일으켜 발치를 보는 듯한 자세로 힘을 준다.
숨이 가빠지면 다시 자리에 누워서 잠시 쉰다.
그러다 다시 숨을 들이쉬고 멈춘 상태에서 힘주기... 숨쉬기... 멈추기... 힘주기...
이걸 계속 반복한다.
옆에서 마모짱은 내 손을 쥐어준다던가 머리를 쓸어올려준다던가 이것저것 해줬는데
그쪽에는 정신도 안 가고... 하여튼 숨쉬고 힘주고 숨쉬고 힘주고...
계속 힘을 주면서 아 이제쯤 나오겠다... 하는데 "힘 몇번만 더주면 돼요" 하니까 왜그리 짜증이 나던지 -_-;
뭐야 아직이야? -_-+ 라는 기분이 되었다.
계속 힘주다보니 어느샌가 안면없는 할아버지 의사선생님(병원 원장님이란다)이 들어오셔서 분만상태 체크.
그리고 왠지 모르겠는데 "마취제 투입합니다" 라는 말이 들려서
이제와서 무통하는것도 아닐텐데???하고 생각했다.
다음 순간 마모짱은 기겁했다고 ㅋㅋㅋ
할아버지 의사가, 가위를 손에 들더니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썩둑썩둑 자르더란다 ㅋㅋㅋ
그러고 보니 분만할 때 회음부 절개를 하는 거였다. 전혀 기억도 못 하고 있었음.
그리고 나츠키 탄생. 오전 11시 04분.
3.2kg 50cm는 생각보다 작았다;
역시 민헉이(4kg)를 먼저 보면 모든 아기가 다 작아보이는 이런 부작용이(...)
솔직히 남들이 다 얘기하는 "수박같은 게 걸려있다가 쑥 빠져나가는 기분" 이 전혀 안 들었다;;;
그냥 계속 아팠던 거 같은데, 마모짱 말을 빌리자면 그 뒤에 바로 태반이 빠져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랬던건가...
근데 태반 빠져나오는 것도 빨랐다. 낳고 나서 30분쯤 후에 나온다더니 -_-;;;
마모짱은 탯줄 자기가 자르는건가! 하고 긴장했는데 그냥 할아버지 의사가 썩둑 잘라버렸단다.
그건 의사한테 얘기하면 자르게 해 주는 모양인데, 나는 몰랐음;
덤으로 비디오 카메라도 갖고 들어갈 수 있는 모양인데, 역시 몰랐음;
그럼 뭐하냐; 마모짱이 너무 당황해서 GF1이 아니라 아이폰밖에 안 갖고 왔는걸 -_-;
갓 낳은 아기는 드라마처럼 크게 응애응애 울지는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울어도 그리 크지 않다. 아니면 내가 혼이 빠져서 잘 안 들린건지 ㅋㅋㅋ
마모짱이 찍은 분만직후의 내얼굴 보면 진짜 혼이 빠진 사람같다.
시선도 뭘 보고 있는지 모를 지경이고.
아기는 낳으면 다른 사람들 사진처럼 바로 가슴위에 올려주고 내가 만지나 했는데
가슴 위에 깔개를 깔고, 아기를 그 위에 올려서 보여주기만 하는 거였다.
나츠키를 처음 본 인상은 "... 에일리언? " ㅋㅋㅋ
양수에 통통통 부푼 아기가, 눈도 한쪽만 뜨고 입은 비뚤하게 다물고 있고.
드라마에서 본 아기 첫모습이랑 너무 틀려서 ㅎㅎㅎ (드라마를 넘 많이 봤어... ㅋㅋㅋ)
그래도 본 순간
아들아 너도 고생했다... 진짜 수고했다
하고 생각했다.
아기 보여준 후 한쪽 옆으로 데려가서 닦아주었다.
여기 병원은 드라이 테크닉이라고, 아기를 씻는 게 아니라 핏물만 가볍게 닦아주고
태지와 각종 분비물은 생후 1~2일동안 자동으로 떨어지도록 한다고 한다.
태어난 아기를 바로 씻기면 아기가 충격을 받아서 좋지 않다나.
그동안 나는 후처리 중.
솔직히 애 낳는 것보다 회음부 절개 꿰매는 게 더 못견디겠더라 -_-; 따끔따끔 아픈 게 -_-;
분만후 바로 개인실로 옮기는 게 아니고
분만실에서 30분 정도 휴식시간을 준다.
그동안 닦아낸 아기를 다시 데려와 젖을 물린다.
누워서 젖을 먹이는데, 다행히 가슴이 큰 편이라(...) 아기가 젖을 쉽게 물었다.
물론 물고 빤다고 바로 젖이 줄줄줄 나오는 건 아니었지만 -_-;
아기가 젖을 빠는데, 진짜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들더라.
길이도 잴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무언가가, 10달 동안 내 뱃속에서 어엿한 아기로 자라
이제 낯선 세상에 처음으로 발 디디는구나...
아들아 내가 니 엄마야...
잘해보자... 만나서 반갑다...
하여튼 일단 낳았는데, 낳고 나서 생각하면 역시 진통 길게 하는 것보다는 빨리 낳는 게 좋다.
남들처럼 24시간 진통하고 어쩌고 생각하면 현기증이... orz
무통도 안하고 자연분만 성공했고 초산부인데도 5시간만에 상황 땡처리됐으니
나는 진짜 행운이라고 생각함. 물론 낳고 나서도 거의 붓지도 않고 컨디션도 양호했고 젖도 잘 나오는 편이고.
그리고 이제는 본격 아기 성장 시뮬레이션 게임 돌입... 으아아아 난 시뮬레이션 쪽은 취미 없는데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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